2013년 5월 9일 목요일

##---@경상도와 전라도, 역사적 진실과 실체

---@경상도와 전라도, 역사적 진실과 실체!@ ★영남패권
---@경상도와 전라도, 역사적 진실과 실체!@

박정희와 경상도인들이 전라도를 폄하하면서 즐겨 사용하는
"...카더라" 식의 날조와 조작이 아닌 역사적 실증을 예로 들어서 확인하여 보자!


1.신라가 한민족 최초의 치욕적인 사대주의로 당나라와 함께 고구려-백제를 멸한 나머지..
한민족의 광활한 영토를 10분의1로 동강내어서...1천년이 지난 지금도 고토회복은 커녕..
아시아의 변방국으로 남게된... 단군이래 최대의 민족적 비극인 이 사건 한가지 만으로도
경상도인들은 "민족적 패륜"을 저지른 "한민족의 공적"으로서 영원히 용서될수 없을 것이다.!

2.몽고군의 침략시 30년간의 항쟁중...강화도 항쟁이 종료된후...
전라남도 해안지대와 진도에서 삼별초가 대몽항쟁을 끈질기게 이어갔는데
경상도는 전라남도와 인접한 한두 지역에서만 초기에 잠간동안 참여하게 된다.

나중에 진도에서 마저 저항이 어려워지자 제주도까지 들어가 항전을 계속하다가
1273년(원종 14) 몽고군에 패하여서 삼별초의 대몽항전은 막을 내리게 된다.
이때.. 경상도는 몽고군의 앞잡이 역할을 한다.!
(제주도는 1946년까지 전라도였음)

3.임진왜란시에는 오죽하면 선조가 "전라도가 없으면 조선이 없다"고 하였겠는가...!

"이순신과 전라도민"의 눈부신 연전연승과 "원균과 경상도민"의 치욕적인 패전들은
잘들 아시니 생략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경상남도 진주에서 벌어진 "2차진주성 전투"를 언급하고자 한다.

이 전투는 1593년 6월 20일부터 29일까지 열흘 동안 치열하게 벌어지는 전투로..
경상우감사 김륵, 순변사 이빈, 성주 목사(星州牧使)로 임명된 의병장 곽재우등이
임금의 명령을 거역하면서 까지 공성전(空城戰)을 주장하면서 일본군관의 전투를
서로 회피하자...선조가 전라도군대에 진주성을 지킬것을 명하게 되는데...

김천일(金千鎰) 창의사(倡義使) (우도 절제사-친아들 상건과 함께한다.)
최경회(崔慶會) 경상 병사(좌도 절제사)
황진(黃進) 충청 병사 도순성장(都巡省將)
장윤(張潤) 사천 현감(좌 의병부장)
임희진(任希進) 해남 의병장(전투대장)
심우신(沈友信) 영광 의병장(전투대장)
이종인(李宗仁) 김해 부사(부장)
고종후(高宗厚) 복수 의병장(복수대장) -호남의병장 고경명의 아들,
오유(吳宥) 복수 의병부장(전투부대장)
민여운(閔汝雲) 비(飛) 의병장(부장)
이계련(李繼璉) 의병장(전투부대장)
강희보(姜希輔) 표(彪) 의병장(부장)
강희열(姜希悅) 분(奮) 의병장(전투대장)-강희보와 강희열은 광양출신으로 형제임,
이잠(李潛) 적기(敵氣) 의병부장
고득뢰(高得賚) 우 의병부장(부장)
양산숙(梁山璹) 공조 좌랑(부장)..등...
(이상의 모든 장수는 전라도 출신으로서 전원이....
전사하거나 진주 남강에 투신하여 자살하게 된다.)

전라도 군대와 민간인 2만7천여명이 머나먼길을 걸어서
진주성에 도착한후.... 극도로 피곤한 상태에서 전략회의을 하게 되는데....

경상도군과 의병대장 곽재우등은 6만이넘는 대군인 일본군이 요구하는데로
성을 비우고 후퇴하자는 공성전(空城戰)을 주장하면서 전투를 반대하였고....

전라도출신 장군들은 성안의 식량도 충분하고 수비하기 좋은 진주성의 지형과
구조를 최대한 이용해서 목숨을 걸고 수성전(守城戰)을 하자면서 격렬하게
대립을 하게된다.

결국...의병장 곽재우등의 경상도 군대는 성밖으로 나가 후방에서 지원공격을
하겠다면서 진주성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모두 도망을 가버린다.!

경상도 출신 장수들중에서...
서예원(徐禮元) 진주 목사(전투대장)
김준민(金俊民) 거제 현령(部長)
송제화(宋悌和) 감포 현령(전투대장)
정명세(鄭名世) 해미 현감(전투부대장)
성수경(成守璟) 진주 판관..등 극소수만 진주성에 남게 되는데...

이자들은 도망을 가려는 것을 전라도 출신 김해부사 이종인(李宗仁)이
위협해서 붙잡아둔 탓이다.

이후 전라도 군대는 경상도 군대가 후방에서 지원을 하여준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서...
10일동안... 일본군 6만명의 총공세에 맞서서 주야로 처절하게 싸우면서 이제나 저제나
경상도 군대의 후방공격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는데도 성밖에서 지원을 약속한
경상도 군대와 의병장 곽재우등은 화살한방 쏘기는 커녕 그림자도 볼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성안의 전라도 군대는 ...
일본군측으로 부터 조선군의 지원은 불가능하니...항복을 하라는 요구를
여러 차례에 걸처서 받았으나...단호하게 거절하면서 항전를 계속하다가...
끝까지 지원약속을 지키지 않는 경상도 군대를 원망하면서...
전원이 통한의 절규속에서...장렬하게 전사하거나...
진주 남강에 투신자살들을 하고 만다.!

성이 함락된후..최경회와 서예원의 시체는 일본군이 남강에서 찾아내서
목을 잘라낸 다음 소금에 절여서 서울 종로 저자거리에 긴창에 꽂아서 전시를 한후..
일본에있는 풍신수길에게 보내진다.!

일본군은 진주성에 입성한후 여자들만 빼고..움직이는 생명체들은
가축까지 포함해서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는데...
"2차 진주성 전투"는 임진왜란 기간중 가장 치열하고 잔혹한 전투로 기록이 되고 있다.

그 전에.. 일본군이 진주성을 공격하기전..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명령을 내리길....

경상도는 백색(항복-협력자)으로 표시하여서 한명도 죽이지 말라하였고..
전라도는 적색으로 표시하여서 남김없이 모두 죽여서 징표로 코을 베어오라고 하였다.

즉..항복하고 협력하는 자들은 살려주고..반항하는 자들은 잔인하게 죽이겠다는..
동서고금의 침략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민심교란 작전이였던 것이다.

이러한 히데요시의 명령은 조선곳곳에 방을 붙여서 민심의 이반을 노렸는데...
경상도군대와 곽재우등이 여기에 부회뇌동을 한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지금도 일본에는 18만개 이상의 전라도인들의 코가 묻혀 있는 코무덤이 있다.


경상도 뿐만이 아니였다.

1593년 2월(선조 26년) "2차진주성 전투"...4개월전에 경기도 행주산성 전투도 싸울 군대가 없자.. 전라도 광주목사인 권율장군에게 지키게 하여서 권율은 전라감영군사 1만5천명을 이끌고 전라도 출신인 병사(兵使) 선거이(宣居怡), 창의사(倡義使) 김천일(金千鎰)등과 함께 3만명의 일본군과 9차례의 치열한 전투를 벌여서 승전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행주대첩이다.
(창의사 김천일은 4개월후..2차진주성 전투에서 아들 상건과 함께 죽게된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일본사학자들 중에는 임진왜란을
"조선과 일본의 전쟁"이라기 보다는 "전라도와 일본의 전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4.동학혁명도 시작할때는 경상도와 전라도가 같이 하였지만..
일본군이 총을 쏘아대면서 공격을 하여오자..
경상도 출신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일시에 모두 고향으로 도망가고 만다.

전라도인들만 남아서 끝까지 항전하다가 약 30만명이 전사한다.
마지막 큰전투가 벌어졌을때 일본군의 길잡이 역할을 한사람이
경상도 출신인데 이름이..민병무란 자이다.


5.일제시대 "광주학생의거"도 전라도 광주에서 일어난 민족적 쾌거이고..

6.1979년 10월 부마항쟁 때..
공수부대가 개머리판으로 5명정도 치받아 버리자..순식간에 진압이 되버리는데...
이러한 공수부대의 성공담(?)은 1980년 5월 광주항쟁에 더욱 잔인하게 적용이 되어서
(광주진압군 공수부대 여단장이였던 최세창이 청문회에서 증언함!)
처음부터 대검으로 난자를 하여버리는 20c 인류사에 유례가 없는 잔혹사로 기록이 되고있다.

이와같이 경상도인들은 자자손손..한민족에 대한 배신행위를 계속하여 왔으며...
한민족이 수없이 많은 외침을 받아오는 와중에도....
민족애를 발휘해서 끝까지 싸워 본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경상도인들은 맨먼저 도망가기에 바빴고..언제나 침략군의 앞잡이 역할에 충실하였다.
도대체 그들은 자자손손.. 왜?..왜?...그러한 역사적 배신행위에서 못 벗어나는지..
심히 안타갑기 그지없다.

이와 같이 단군이래로 경상도는 "언제나 매국노로...!"
전라도는 "언제나 민족의 수호신"으로 정반대 되는 길을 걸어오고 있는 것일까...!

한국인이라면 진지하게 성찰하고 연구하여서 "민족의 공적"인 경상도인들이
다시는 반민족적인 "반역과 배신"을 못하도록 응징하고 교육할 의무가 있다고 할것이다.

그러함에도 세상의 진실과 이치를 외면하려는 "경상도인"들이 감히 "전라도인"들을
비난하는 민족적 범죄를 범하고 있으니..이 얼마나 천부당 만부당한 도발이며 망발이란 말인가...!!

"경상도인"들이여...!
"전라도인"들에게 "백배사죄"하고 "대오각성"들 하라...!!!!




♣♣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경상도에서 벌이진 극악무도한 패역행위와
그러한 경상도인에 대한 평전...!

1.)
慶尙徒 剃頭倭裝 導倭賊侵寇忠淸全羅
殺傷擄掠放火怯奸又諶於倭賊也 取老少婦女首及獻上倭將..

경상우도 체찰사가 보고하기를"경상도에서는 요즈음 (왜란 중) 앞머리를 밀고
왜옷을 입고 왜적의 앞장을 서서 타도로 진출하여 노략질.방화,및
부녀 겁탈을 우심히 하는 경상도민이 무수히 많습니다.

이들의 소행은 포악하여 오히려 왜인들보다도 흉악한 바가 있습니다.
심지어 이 경상도인들은 충청,전라지방으로 진출하여
노인,아이,부녀자의 수급을 베어 왜적에 진상합니다."
[충무공 난중일기中에서...]

2.)
4월 29일
오늘날 적의 세력이 이와 같이 왕성하여 우리를 업신여기는 것은
모두 해전으로써 막아내지 못하고 적을 마음대로 상륙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상도 연해안 고을에는 깊은 도랑과 높은 성으로 든든한 곳이 많은데,
성을 지키던 비겁한 군졸들이 소문만 듣고 간담이 떨려 모두 도망갈 생각만 품었기 때문에
적들이 포위하면 반드시 함락되어 온전한 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지난번 부산 및 동래의 연해안 여러 장수들만 하더라도 배들을 잘 정비하여
바다에 가득 진을 치고 엄습할 위세를 보이면서 정세를 보아 전선을 알맞게 병법대로 진퇴하여
적을 육지로 기어 오르지 못 하도록 했더라면 나라를 욕되게 한 환란이
반드시 이렇게 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이 이에 미치니 분함을 더 참을 수 없다.
[이순신의 난중일기 중...]

3.)
慶尙將卒 皆烏合之兵也 日日一斬卽 軍令保全.
"경상도 군졸은 모조리 오합지졸이라 하루에 한놈 목을 쳐야 군률이 보전된다".
(충무공 난중일기中에서)....


4)
[선조] : 경상도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는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윤두수] : 그렇습니다. 신이 팔거(八?)에 갔을 때에 사람을 잡아서 먹은 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는 즉시 군관(軍官)을 보내어 베었습니다. 양호(兩湖)에 들어갔을 적에는 이런 일이 있다는 말을 못 들었습니다.
[『선조실록』권46 선조26년 12월 임자(3일)]

이 사료는 1593년 12월인데, 양호(兩湖)는 호서(湖西), 호남(湖南)을 말하며, 이는 충청도와 전라도 지방에서는 사람잡아먹는 말을 듣지 못했다고 했음에도 경상도 팔거현(八?縣)에서는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팔거현 [八?縣]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출장소(漆谷出張所) 관내(옛 漆谷邑)에 있었던 고려 초기의 행정구역.

본래 팔거리현(八居里縣)인데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때 팔리현(八里縣)으로 고쳐서
수창군(壽昌郡:大邱의 壽城)의 속현(屬縣)이 되고, 고려 초 다시 팔거현(八居縣)으로 고쳤다가 뒤에 거(居)가 변하여 팔거현(八?縣)이 되었다. 1018년(현종 9) 경산부(京山府:星州)에 속하여 별호를 칠곡(七谷)이라 하였다.

1640년(조선 인조 18) 가산(架山)에 산성을 쌓아 도호부(都護府)를 두어 고을 이름을 칠곡(漆谷)이라 하고 1819년(순조 19) 가산산성에 있던 관아(官衙)를 평지인 팔거현 옛 자리로 옮겨 칠곡읍의 터를 잡게 되었으며 1981년 7월 칠곡읍 일원이 대구에 편입되었다.

5)
성호 이익의 예리한 경상도론.........

"경상도인은 권세 앞에 한없이 나약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부응하여 능히 밑에 두고 부릴만 하다.
허나 일단 스스로 권세를 누리면 그 힘을 함부로이 휘두르며
오만방자하게 구니 뭍사람이 그 괴로움이 크다.

입으로는 옳은 소리만 하면서도 뒷전으로는 온갖 못된짓을 꾸미며
입으로는 대의와 도의를 소리높여 외치면서도 뒷전으로는
자기의 사익과 영달을 은밀히 도모하니 자못 그 행태가 가증스러웁다.

성정이 포악하고 거칠어 사람의 수족을 다침을 예사로 알며
소매를 나누어 헤어질시에는 반드시 해악을 끼치고 떠나가니
평소에 필히 멀리함이 가한 무리라 할 것이다
모사이트 출처 :닉네임민족 불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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