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9일 목요일

#### 전라도 사투리의 비애

쩌그 뭐시다냐 거시기가 긍께..." 의 전라도 사투리를 공식석상에서 내놓고 쓰기에는 부끄러운 언어로 전락시켜버린 것은 바로 경상도 패권주의 역사의 서글픈 유산입니다.
가깝게는 해방 후 패권적인 경상도 독재정권이 반 세기를 쌓아 온 문화패권적 역사의 결과물이자 조금 더 돌아보면 영남 사림세력이 조선 500년 대부분의 시기를 억압적으로 지배해온 산물이기도 합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민족분열적,사대주의적인 소위 3국통일 이후 1000년을 넘게 계속된 신라부족 패권의 역사 속에 구축된 신라부족의 패권적 문화 헤게모니의 역사의 결과이겠죠...
서울말 배우기가 어렵다며 일상의 대화조차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듯 말하는 경상도 사투리의 거침없는 태도에서 폭력성과 오만함을 느끼는 것은 나 만의 느낌은 아닐 것입니다.
김민웅 선생의 이 글이 쓰다만 글처럼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좀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한국의 지역문제를 지역감정 문제의 시각으로 보는 한 결코 문제의 본질의 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관계 속에서 한국의 지역 문제는 바라볼때 한국 지역 문제의 본질에 접근 할 수 있게 됩니다.
억압적인 지배자의 위치에서 정치 문화 경제 모든 분야에서 1000년을 넘게 쌓아온 패권적 지역주의에 맞서 생존을 위한 방어적 지역주의를 넘어 저항적 지역주의로 진화해온
전라도의 지역주의를 평행선상에서 바라보려 한다면 또다른 억압이자 왜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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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그 뭐시다냐 거시기가 긍께..."
김민웅의 세상읽기 <156>
등록일자 : 2005년 11 월 18 일 (금) 09 : 39
사투리가 최근 방송 드라마와 영화의 흥미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웰컴투 동막골>의 "나, 마이 아파~" 하는 순박하고 다정한 강원도 사투리가 깊은 인상을 남긴 뒤 사투리는 작품의 한 매력으로 꼽히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들이 그동안 그렇게 아파했던 것을 몰랐던 세상은 그 새삼스러운 깨달음이 도리어 재미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알다시피 한때 호남 사투리는 주먹패, 식모, 술집 종업원 등이 등장하게 되면 으레 나오는 식이었습니다. 호남은 지역적으로 변방이었고 계층적으로는 바닥에 처해 있는 집단의 상징이었으며 그 언어는 모멸의 대상이기조차 했습니다. "쩌그 머시다냐 그 거시기가 긍께 음…" 하고 이어지는 호남 사투리는 자기의 속내를 밝히기 쉽지 않았던 이들의 말버릇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이 구성진 호남 사투리는 우리 판소리의 혈맥입니다. 다행히 작가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전라남도 벌교의 사투리를 민중의 언어로 새기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공식석상에서는 내놓고 쓰기에는 부끄러운 언어로 전락해버렸던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호남 출신들은 자신의 사투리를 숨겼고 매우 빠르게 서울말을 습득하기도 했습니다. 영남 출신들의 서울말 배우기가 영 서툴고 어색했던 것과는 대조를 이룬 현상이었습니다.

영남 사투리는 대체로 힘 깨나 쓰는 사람의 말이었습니다. 영남 출신들은 TV에 나오는 사투리가 엉터리다, 부산 마산이 다르고 대구 진주가 다 다른데 이건 순전히 모방해서 만들어진 가짜 사투리다, 라고 항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남 사투리가 계층적으로나 권력의 위계질서에 있어서나 상대적으로 윗자리에 버티고 있었던 사실은 별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가령 영남 사투리에 "퍼뜩 일나라" 하고 인상 쓰듯 말하는 방식은 그 힘을 대변해주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영남이든 호남이든 그 말을 쓰는 사람에 따라 애교 넘치고 정감이 깊은 말로 바뀌기도 하지만 대체로 호남은 그 구성지기 짝이 없는 자신의 사투리를 애써 감추었고 영남은 남들 들으면 싸움판이 벌어지는 걸로 착각할 만큼 큰 목소리를 내면서 거침이 없었습니다.

백제의 후예인 경기나 충청의 사투리는 그냥 그저 말없이 내성적인 표정을 지으면서 한쪽 구석에서 가만히 있다가, 사태가 벌어진 한참 뒤 "그거 아닌디유~" 대답하곤 했습니다. 한편 억센 북부 사투리는 남쪽의 이런 사정과는 무관하게 "기럴 테믄 기래보라우" 하면서 굽히지 않고 씩씩하게 자신을 밝혀나갔습니다.

표준어라는 것은 중앙집권적 질서가 만들어낸 문법 현실입니다. 그 지방의 일상 언어를 방언 또는 사투리로 격하시킨 것은 중앙의 문화 권력이 주도권을 갖게 되면서입니다. 그러나 표준어는 다만 언어생활의 한 공통분모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지 그것이 곧 사투리에 비해 우위에 서는 말이라는 뜻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이른바 표준어 또는 중앙어의 무지한 오만입니다.

사투리에는 그 말을 쓰는 삶의 현장이 오랜 역사를 통해 일구어낸 웃음과 눈물, 그리고 사연과 정겨움이 듬뿍 담겨져 있습니다. 소중한 유산입니다. 격식이 앞선 서울말이 담아낼 수 없는 풍부한 세계가 그 안에 있습니다. 제주도를 포함한 한반도 사투리가 제각기 정당한 시민권을 얻는 그런 문화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APEC을 비롯한 세계화의 파도. 그리고 특히 영어에 짓눌린 채 자신의 언어를 잃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사투리에 대한 대중들의 사랑이 새롭게 시작된 것은 참으로 반갑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그러면 "나, 마이 아파"가 아니라 "나, 마이 좋아~"가 되지 않을까요?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센타'(오후 4-6시/FM 104.5, www.ebs.co.kr)의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에 연재하는 것입니다.
김민웅/프레시안 기획위원

[출처] 전라도 사투리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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