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9일 목요일

### 한국, 호남은 ,따뜻한 인심과 정이 넘치는 고향 마을

따뜻한 인심과 정이 넘치는 고향 마을 ★영남패권

열린마당③
따뜻한 인심과 정이 넘치는 고향 마을
호남과 호서를 아시나요
김 미 옥 <kimmiok@kma.go.kr> | 전주기상대
호남(湖南)과 호서(湖西)는 호수의 남쪽과 서쪽에 위치한다는 것에서 연유된 명칭이다. 호수는 여러 설이 있는데, ‘김제(金堤) 벽골제(碧骨堤)의 남쪽을 호남 지방, 서쪽을 호서 지방이라 부른다’라고 말하고 있는가 하면, ‘충청북도(忠淸北道) 제천(堤川)의 의림지(義林池)를 일종의 호(湖)로 보고 거기를 표준으로 해서 충청도를 호중(湖中), 혹은 호서(湖西), 그 남쪽인 전라도를 보통 호남(湖南)이라 했다’고도 한다. 또한 ‘금강 이남을 강남도(江南道)라 부른 데에서 호수는 금강을 가리키므로 금강의 남쪽 땅을 호남(湖南)이라 하고, 서쪽 땅을 호서(湖西)라고 하였다’는 지명의 유래가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호남 지방은 전라남도(全羅南道)와 전라북도(全羅北道)를 합쳐서 부르는 말로 호남은 전라남북도(전라도)의 별칭이고, 호서지방은 지금의 충청남도(忠淸南道)와 충청북도(忠淸北道)를 포함하는 것으로 호서는 충청남북도(충청도)의 별칭이다.
호남 지방은 삼한 시대에는 마한에 속하였고, 삼국 시대에는 백제의 영토였다. 이 지방은 고려 성종 때 전주 등의 북쪽 군현으로 강남도(江南道)를, 나주 등 남쪽 군현으로 해양도(海陽道)를 각각 만들었는데, 그 뒤 현종 9년에 전주의 전(全)자와 나주의 나(羅)자를 따서 전라도라고 하였다.
호남은 동쪽으로 소백산맥이 경계가 되고 북쪽으로 금강이 경계선 구실을 한다. 노령산맥이 남서쪽으로 뻗어 나가므로 동고서저의 지형을 이룬다. 영남 지방과 경계를 이루며 병풍처럼 이 지방을 둘러 지나는 소백산맥의 봉우리로는 백운산과 덕유산 등의 명산이 있으며, 노령산맥에는 운장산, 내장산 등의 명산이 있다.
호남 지방의 특징으로 첫손 꼽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들판에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끝없이 펼쳐진 호남평야가 있다는 것이다. 보통 호남평야라고 하지만 전북평야 또는 김제·만경평야라고도 부르며, 때로는 전남의 나주평야까지 포함시키기도 한다. 김제사람들은 호남평야를 ‘김제만경 외애밋들’이라고 부른다. ‘외애밋들’은 너른 들,곧 평야를 일컫는 말이다. 김제의 옛이름인 마한시대의 ‘벽비리’와 백제의 ‘벽골’은 모두 ‘벼의 고을’이란 뜻이다.
또한 호남 지방은 해안선이 복잡하고 연해에 도서가 많다. 변산, 고흥, 여수 등의 반도, 줄포, 남해, 보성, 순천 등의 만이 있고, 근해에는 고군산군도, 진도, 완도, 지도, 신안군도 등 400개 이상이나 되는 도서가 산재한다.
호남 지방은 기후가 온화하고 토질이 비옥하여 생산물이 풍부한 지리적 환경과 빼어난 자연 환경의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어서 다른 고장에 비해 예술이 잘 발달할 수 있었다. 민요, 판소리, 서화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한때는 마을마다 소리꾼이 있었고 한 집 건너 그림 그리는 이가 있었다고 하니, 가히 ‘예향(藝鄕)의 고장’이라고도 불릴만하다.
호남인의 심성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나 <여지도서(與地圖書)>에 그 기록이 많이 보이고 있는데, 인심효후(人心酵厚), 순후지풍(淳厚之風), 거인순박(居人淳朴) 등의 어구들이 많이 나온다. 이는 곧 호남인의 순후하고 순박한 심성, 즉 ‘숫한 심성’을 대변해 주고 있다. ‘숫하다’라는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인심이 순후할 뿐 아니라 온후하고 정이 많으며 푸짐하고 넉넉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숫한 심성은 비옥한 평야가 많아서 모든 곡식이 넉넉하고, 바다에 임하고 있기 때문에 개방적인 성격에서 온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호남인은 역사적인 조건에 따른 서민성에서 항상 남을 돕고 같이 애환을 즐기며, 의로움에 앞장서는 기질에서 형성된 것이리라.
더구나 콩 한 조각도 나눠 먹는다는 공동체 의식이 각별해서 일찍부터 협동 농장인 두레나 공동 작업제인 품앗이가 성행되고, 또 음식만 하더라도 전라도 지방은 기름진 호남평야의 풍부한 곡식과 각종 해산물, 산채 등 다른 지방에 비해 산물이 많아 음식의 종류가 다양하다. 전라도 지방의 상차림은 맛도 으뜸이면서 음식의 가짓수가 전국에서 단연 제일로 상위에 가득 차리므로 처음 방문한 외지 사람들은 매우 놀라게 된다. 오늘날에도 이 전통은 그대로 살아 남아 호남 지방, 특히 ‘맛의 고장’으로 유명한 광주·전주의 술집에 가보면 서울 지방에서 몇 만원 어치나 되는 안주를 돈 안 받고 거저 주고 있다. 먹다가 모자라 다시 청하면 웃으면서 얼마든지 갖다 준다.
호서 지방도 삼한 시대에는 마한에, 삼국 시대에는 백제에 속하였다. 고려 성종 때에는 이 지역을 중원도(中原道), 하남도(河南道)로 나뉘었다가 예종 1년에 중원도에 하남도를 병합해서 양광충청도(楊光忠淸道)라 하였다. 그 후 양광도로 개칭하였다가, 공민왕 5년에 충주의 충(忠)자와 청주의 청(淸)자를 따서 충청도라고 불렀다.
호서의 경계는 동쪽으로 소백산맥을 사이에 두고 영남 지방과 접하고 서쪽으로는 서해 바다가 보이며 남쪽으로는 금강을 사이에 두고 호남 지방과 접하고 북쪽으로는 안성천과 차령산맥을 사이에 두고 경기 지방과 구분된다.
소백산맥의 서쪽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란히 달리고 있는 차령산맥은 호서를 둘로 가르는 자연적인 경계선을 만든다. 이 산줄기의 봉우리로는 광덕산, 금계산, 칠갑산, 계룡산 등이 있다. 차령산맥 서쪽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소규모의 가야 산지가 형성되어 있고 산맥 사이로 금강과 삽교천이 흐른다. 평야로는 대전과 논산을 중심으로 호서평야가 있고, 청주를 중심으로 미호평야가 형성되어 있으며, 예산과 당진을 중심으로 한 예당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이러한 호서지방의 산과 평야가 만들어내는 스카이라인은 부드럽고 낮고 느리게 펼쳐져 호서인의 맥박을 한 호흡 늦춰준다.
경기와 접경한 호서지방은 서울과 가까울 뿐만 아니라 기후가 온난하고 산악 지대가 적으며 비옥한 평야가 많아 물산(物産)이 넉넉하여 살기에 알맞았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여러 대를 서울에 사는 집으로서 이 지방에다 전답과 주택을 마련하여 생활의 근본되는 곳으로 만들지 않은 집이 없을 정도였다 한다. 또한 서울의 관계(官界)에 몸담고 있던 자가 실각하든지 당쟁에 관련되어 낙향하면 대개 그 목적지도 이 지방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낙향하여 이 지방이 생활의 근거지가 된 서울의 옛 세가(世家)들은 관계에 나갈 시기를 엿보았다. 이에 따라 이 지방에는 이른바 양반이 많이 살게 되었고, ‘충청도 양반’이란 말도 생기게 되었다.
<택리지>에서는 호서 지방의 인심을 ‘오로지 세도와 재리(財利)에 따른다’라고 하였다. 이 지방에 근거를 두고 중앙 관계에 다시 진출하려는 대망(大望)을 항상 품고 살아온 사대부들은 그것이 좌절되면 그 대신 재력을 얻는 방향을 택한다. 그래서 험담가들이 호서인을 음흉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낙향한 사대부와 그 가족들은 사대부로서의 품위를 유지하고 이른바 행세를 하기 위하여 언행을 보통 백성과 달리하였다. 말을 천천히 사려(思慮) 깊게 해야 하고, 행동을 신중히 해야 했다. 이것이 관습화한 결과, 충청도 사람은 모두가 느리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여유롭고 느긋한 양반의 고답적 기질은 청풍명월(淸風明月)에 비유되곤 하며, 제천에 청풍이라는 지명이 있기에 충청도를 ‘청풍명월의 고장’이라는 말로 대신 부르기도 한다.
호남 지방과 호서 지방 모두 기후가 온난하고, 비옥한 넓은 평야가 많아 옛날 농경 사회에서는 우리나라의 곡창 지대로서 농민 중에는 천석꾼, 만석꾼이 많이 나왔을 정도로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전라도와 충청도 남부 지역에서 모 심고, 김 매고, 벼 베고, 타작하는 거의 모든 농사 과정에 호흡을 맞추어 노래하였다는 남도 민요는 여유가 있고 넉넉한 창법이 특징적이며, 노랫말로 쓰인 구수한 사투리만큼이나 표현이 구성지니 푸근한 인심이 저절로 느껴진다.
다른 지방과 비교하여 온난다우(溫暖多雨)한 기후 조건을 닮은 이곳 사람들의 따뜻한 인심과 넘치는 정 때문에 누구에게나 고향처럼 여겨지는 곳. ‘거시기’ 한마디면 이심전심으로 다 통하는지라 긴말이 필요 없는 곳. 된장에 풋고추 박히듯 이곳에 콕 눌어붙어서 꿈쩍 않고 살고만 싶어지고…. 그래서 시집갈 때는 안 울었어도 호남과 호서를 왔다가 떠날 때는 운다나요.
오매, 좋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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