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6일 금요일

충청도 사람이 본,경상도 밥상머리교육



충청도 사람이 본,전라도,.....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씨가 김재규의 총에 맞아 숨졌을 때 나는

정릉3동 예비군 중대본부에서 방위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린 그때 정말 북한 괴뢰군이 쳐내려오는 줄 알았습니다. 전쟁이 나는 줄 알았지요.

그러나 실제 전쟁은 남과북이 아니라, 광주에서 일어났지만 말입니다.
80년 5월 까지도, 그리고 80년대 중반까지도 나는 김대중과 전라도분들에 대하여

왜곡된 선입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김대중 빨갱이! 전라도깽깽이! 사기꾼! 뒤통수!
처음에는 간과 쓸개 어쩌고저쩌고 하다가, 뒤끝이 안 좋으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들.......

경상도에서의 밥상머리 교육은 어느 정도였는지 몰라도?

우리 충청도 산구석의 밥상머리 교육은 그정도 까지 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전라도라면 왠지 그저 쉬쉬하는 그런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만.

다만 전라도 특히 당시의 신민당 대통령후보로 나온 김대중을 지지하는 몇몇 사람들은
우리 고향에선 빨갱이 또는 간첩 비스 무리한 취급을 받았고.
면에서 할당해주는 비료 농약 갈탄(담배농사를 짓는 동네의 특성상 건조실에 담뱃잎을
건조하는데 필요한 갈탄을 각 집집마다 할당하여 배급해 주었음)의 배분 시 누락시키거나
극히 적은 양만을 배정을 해준다든지. 벼와 담배 가마니의 수매 시에 불공평한
고의적 불이익을 준다는 등의 공공연한 악 소문들이 횡횡하기는 했었습니다.

실제 대놓고 그런 얘기들은 제가 서울에 올라와 세뇌된 경상도 사람들로부터 주입된 여파가
상당히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당시 만나고 사귀었던 전라도 친구들과의 사이에서는

빨갱이나 사기꾼 뒤통수 어쩌고 하는 친구들은 별로 못 만났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라면 심심치 않게 오랫동안 시달리기도 했었습니다만.

10대의 후반 한때 경상도와 전라도의 이곳저곳을 각기 한 달여씩 무전취식 도보 여행으로

산천을 주유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경상도에서는 박정희 각하의 위대함과 유신체제의 당위성

그리고 전라도 빨갱이들의 뒤통수를 조심하라는 무시무시한 쇠뇌를

밥과 잠자리를 무상으로 제공받는 대가로 누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전라도의 여행에서는 알지 못하는 이도 나를 잡고
“우리 전라도 사람들! 절대 나쁜 사람들 아녀! 빨갱이도 아니고 사기꾼 덜도 아닝께,
이다음에라도 누구라도 그렇게 말해도 이잉 믿지 말어?!”
그런 소리들 숱하게 들었습니다.

당시 전라도분들과 같은 모욕적 지역차별의 피해를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저로서는
왠지 그분들의 모습이 조금은 구차스럽게 느껴질 정도 였습니다.
그리고 80년 5월에는 분명 나의 위치는 김대중과 전라도 분들의 반대편에 서 있었습니다.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의 유신통치 비상계엄 독재와 고문 부정부패와 통행금지
일방적 몰상식의 철권통치에 짓눌렸던
(난 사실 통행금지를 제외하곤 정치적 자유라는 면에서는 별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아예 정치적 견해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민심이 터지고 80년 5월의 그 광주에서의 학살극이 벌어졌을 때에도
직접 겪거나 본적이 없었으므로 또 소위 언제 끌려갈지 모르는
전쟁 발발의 공포감도 있었던 터라.
전 김대중과 전라도분들의 반대편에 서서 그들을 비난하는데 일조하였음을 고백합니다.

더 나아가 그 2-3년 뒤.
당시의 광주에서의 그 참혹함을 직접 겪은 어느 여자 분과의 대화에서
저는 그 여자 분의 공포와 두려움 절망감을 위로하기는커녕
당시 전두환과 공수부대 진압군들의 정당성과 불가피성 그리고 더 나아가
진압군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고립된 광주를 외곽에서 포위한 채
대규모 융단 폭격으로 광주를 초토화! 시켰어야 했다는!!
상상을 초월하는 폭언으로.
그 여자 분의 가슴에 공포와 분노를 넘어서는, "절망감의 비수"를 꽂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 그분을 다시는 만나 뵐 기회가 없어서 사과의 말씀을 드릴 수도 없었습니다만.

지금껏 두고두고 그때의 저의 비굴함과 무지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큰 상처를 받았었을, 그 분께 정말로 깊은 사과를 드립니다.

80년 5월 당시 광주가 아니었으면? 서울이나. 부산 대구 또는 대전 등 어디에서라도
전두환과 그 하수인들은 그 살육의 시범케이스를 선보였을 겁니다.
단지 용기가 없었다는 이유로 다른 지역에서는 하지 못한 일을
광주가 일어섰던 것이고.
전쟁의 공포를 핑계로, 광주와 전라도를 시범케이스로 한!

"전두환 일당과 그의 사설 군견들이.
군대의 주인인 국민을 그토록 참혹하게 물어뜯은!
가장 악랄하고도 비열한!! 정권 찬탈행위의 만행을 박정희에 이어 저지른 것입니다."

80년 5월 전두환과 그 군부가 저지른 가장 큰 죄악은 이 땅 대한민국에서
4,500만 국민들의 자존심을 살해했다는 것! 입니다.
2,000여 국민들의 죽음과 부상보다 더 치욕스런 운 것은. 비겁과 비굴의 "거세한 종마 대한민국!"
자유와 민주주의의 자존심을 잃어버린 4,500만의 정치적 벙어리들을 만들어 놓은
역사적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에 저항하는 소수의 목소리들을 향해 지금껏 외쳐댑니다.
“빨갱이!”

그런 그들을 향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참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는 용기.
자유를 말할 수 있는 용기. 그 자존심을!
일제에 이어, 이승만 자유당 독재, 박정희 18년 경상도 유신통치에 이어.
전두환 7년. 노태우의 어부지리 5년. 광대 김영삼의 무지의 5년에 이르는, 35년 동안!
4,500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들에게 빼앗겼던 것입니다.

경상도의 정권 유지를 위한!
비겁하고도 불법적인 박정희와 전두환의, 민족정신의 자존심을 짓밟은 비열한 만행!
그들의 충실한 군견들을 앞세운! 전 국민의 자존심 거세화!
그래서 결국 힘 있는 놈에 붙어 서서, 김대중과 전라도를 향한 집단적 이지메를 통해
최소한의 생명과 최소한의 굴욕적 자유를 보장받고자 했던!
저 비겁한 민중들을 양산해 낸. 그 추악한 범죄를 그들은 부끄럼 없이 저지른 겁니다.

(전두환과 그 군벌들이 만약 80년 5월 광주에서의 진압이 정당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사태의 진압 후. 조속한 시간 내에 대한민국의 주권을 선거를 통한 민간정부로의 이양을 추진하고.
자신들은 그 정부하의 사법기관에 자신들 진압 행위에 대한 판단을 위임했어야 합니다.)

제가 김대중 또는, 전라도를 비교적 공정한 시각과, 그들의 입장에 서서보고.
박정희 정권 18년과 전두환 정권의 탐욕적 경상도의 패권주의 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중반, 세계와 한국의 역사. 특히 근,현대사의 우리의 역사를 읽고서부터 였습니다.

그중 특히 중국의 마오쩌뚱과 홍군의 혁명역사를 읽고서……. . 
우리의 역사를 대입해 보는 순간!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져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초 마오쩌뚱과 홍군이 혁명의 몸을 일으키기 직전까지도
가뭄과 기근이 휩쓴 중국 쓰촨성 한곳에서만, 한해에 600만 명이 굶어죽는
대참사가 발생했는데도, 지주들의 식량창고에는 수만 섬의 쌀과 밀이 보관되어 있었고
지주들은 그 창고에 빈민들이 달려들어 약탈을 할까 봐.
곡식 창고에 불을 지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산해진미를 쌓아놓은 만찬에서, 아홉 번 입에 손을 넣고 토해가며
먹고 마시는 주지육림 속의 광란의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분명 이데올르기를 떠나, 인간애에 대한 범죄입니다.

그러한 상황속에서. 앉아서 굶어 죽으나? 일어서서 싸우다 죽으나?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나의 가족과. 이웃. 대의를 위하여! 싸우다 죽는 삶을 택하지 못하는 국민을,
비겁한 겁쟁이 국민이라고 불러야지? 달리? 무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다행히 그들은 우리와 달리,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군벌 장개석과 남의사의
공포정치를 뚫고 혁명에 성공하는 용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분명히 그들의 역사에 기록된 우리들 조선독립운동 세력들의 이름들과.
그에 반해 그들 제국주의 일본의 하수인으로서, 한민족과 중국의 민중을 도륙 학살한 친일파들의 이름들을...
나는 수많은 책들의 숨겨진 행간 속에서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1945년 해방 후에 극명하게 갈라진 두 길을 걸어간 모습들도
숨겨진 역사의 장막을 제치고 분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역사는 그곳에서 태생적 비극을 안고 태어났으며.
그 불의의 편에 서서 지금껏 내려온 나쁜 피의 유전인자를
지금의 한나라당과 조중동 그리고 경상도가 이어받고 있는 것입니다.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이북출신 친일파. 매판자본의 지주. 서북청년단을 필두로 하는 테러 조직들이
이승만 이하 친일 세력들과 결탁하여 생명을 부지하고.
빨갱이 척결이라는 미명하에, 보도연맹. 제주 4.3사태. 여순 토벌. 지리산 양민 학살.국민 방위군 사건.
4,19 혁명 탄압. 5.16으로 18년. 고문과, 계엄과. 정치적 살인. 그리고 5.17, 광주의 대학살에 이르기 까지......

그들은 저항할수 없는 수백만명의 비무장 양민들과 부녀자 어린이들만을 상대로한!
가장 비겁하고 비열하고 추악한 일방적 학살만을 전과랍시고 자랑한,
장개석 군벌의 남의사를 능가하는 파렴치한 부대였습니다.  

그리고도 그들은 지금껏! 그 질긴 생명력을 이어 내려오고 있는것입니다.
입에발린 빨갱이 타령을 주문처럼 외우면서...... .

그 지독한 악순환의 고리를 1945년 이후,
1997년 제 15대 대통령 김대중의 당선 때 까지, 장장 50여년을 그들이 이어온 것입니다.

그 긴 50여 년 동안의 인고의 세월을 김대중과 전라도는. 샌드백처럼,
경상도를 위시한 기타 등등 지역들로 부터... 그 비열하고도 참혹한 이지메를 당해 온 것입니다.

그들 중 1995년 강준만의 "김대중 죽이기"와 "전라도 죽이기를" 만나기 이전 까지.
나도! 그들 부류중의 하나로, 김대중과 전라도를 향해! 이유 없는 심정적 돌 던지기를 한,
부끄러운 경험을 갖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의 서프라이즈 전신이며, 빅뉴스의 듣보잡 변희재가 "시대소리"를 창간하여 안티조선의 선봉에 서서 활동을 할때 그 게시판에 올렸었던 글 입니다.)   
“전라도 이 개새끼들 다 때려죽여!”

그게 아마도, 1995년 초겨울쯤의 보라매공원에서의 일이었다.
당시 평민당 총재였던 김대중 씨가 전임 대통령 노태우씨로부터 20억의 정치자금을 수수한 사건으로 곤욕을 치루고 있을 때.
이기택 씨와 함께 국민대회를 치룬적이 있었다.

대권 4수에 도전하려는 그의 정치적 생명에 치명타를 가할, 핵폭탄성 스캔들에 맞서
그의 정당성과 지지자들의 동감을 얻기 위한 일종의 세과시형 시위였다고나 할까?

어쨌든 제법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참으로 많은 열혈 그의 지지자들이 인산의 인해를 이룬 그 보라매공원에.
그의 지지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역사의 전환기의 굴곡의 모습들을 지켜보기 위해 참석을 했었드랬다.
그때 그의 연설 내용이나 단상주위의 일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나는 그의 모습이 보이지도 않는 아주 먼 뒤쪽 빈터의 꼬치안주좌판 사이를 어슬렁거렸고
그곳에 참석한 그의 지지자들과, 그들을 지켜보는 사복의 형사들을
오히려 더 주목을 했었었다.


해가질 무렵 집회는 무사히 끝나고 그들이 흩어져 공원을 빠져나갈 때.
후방 후미진 철조망 앞 화단 쪽에서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분명 초대받지 않은 듯한. (물론 그곳의 그 누구도 정식으로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없지만).
50대 후반의 허름한 사내하나가 잔뜩 술에 취한 모습으로, 김대중의 이름을 껌씹듯 입에 달고 욕을 하기 시작했다.

“김대중이 이 빨갱이 새끼! 돈 20억씩이나 받아쳐먹은 도둑놈의 새끼!”
“야! 이. 전라도 빨갱이 개새끼들아 이 도둑놈들아!”
“전라도 이 개새끼들 다 때려죽여!” 난리도 아니었다.

기자들과 형사들도 몰려들어 그의 주변을 에워쌓는데, 그에 힘을 얻었는지.
그는 더욱 기를 세워 욕설을 퍼붓고 잔디밭의 흙을 집어 그들을 향해 뿌려대며
마치 진짜 그들을 한 대씩 후려치기라도 할 듯 주먹을 휘둘러댔다.


그런데 놀랍게도 참으로 놀랍게도 그곳에 몰려 좁은 철조망 후문으로 빠져 나가는,
수백. 수천의. 전라도인, 그들은 아무도 누구도 그를 향해 욕을 하거나 마주보거나  대응하질 않았다.

마치 아무도 없는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그를 피해 묵묵히 철망을 통과하고만 있었다.
오히려 그쪽 지역의 힘깨나 쓰는 듯한. 청년들이 제발 사정하듯..
술 취해 비틀대는 그를 달래 연신 죄송하다며.
알았으니 "어서 좋게 가시라고" 사정을 하고만 있었다.

그때, 그들의 무리 중 한 젊은 사내가 그의 아들임 직한 4-5살 정도의
남자 아이를 목에 태우고 그 술 취한 사내의 옆을 지나치고 있었다.

사내의 행패는 더욱 사나워졌고, 그의 욕설은 더욱 격렬해졌다.
이 씨발! 전라도 개새끼들아 다 때려죽여!
어린 아이에게 까지 주먹을 휘둘러대는 그 사내의 서슬에 놀라 아이가 아버지의 목에 바짝 매달리며

"아빠! 저 아저씨 왜 그래?!" 라고 물었다.
그러자 사내는 “으응 술 취해서 그래.....” 라고만 얼버무리고 사람들의 행렬 속으로 끼어들었다.

그것뿐이다. 내가 보고 들은 것의 전부다. 별것도 아닌 이야기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마치 독일 나치 게슈타포들 앞에서 가스실로 끌려들어가는 .유태인들의 모습을 떠올렸었다.
형사와 기자들도 차마 더 지켜볼 수 없었는지 슬그머니 자리들을 피한 뒤로도
그는 한참을 그 지역 건장한 청년들의 보호 속에서 계속 그들을 향한 저주의 욕설을 퍼부어댔고.......  

그들은 그저 묵묵히 그 공원을 빠져나갔다.

그것이 아마도 내가 그 후, 그들의 편에 서기로 결심을 하게 된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1997년 그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고 그와 그들의 한풀이는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으로 인해, 우리의 민주주의는 반석위에 올라서는 줄 알았고.
미국의 집요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남과북의 갈등도 이젠 마무리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뭡니까! 이건?! (오! 맙소사 하나님!)
역시 수구 보수 꼴통들의 잔재는, 지독하고도 악랄하게, 그 모진 생명력을 이어 갖고.
우리들 역사의 앞날에 저 추악한, 똥물을 뿌려 대고 있습니다.

이종진(leejongjin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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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평생 거짓과 사기질과 반역질과 친일행위말고는 해본일 없는 슨생놈에게 국장이라니,
사람팔자 대통령 함 해보고 볼일이야, 대통령도 지지기반이 광신도절라지역이니 평생 지역분열하고 이간질한 보람이 있네,
물론 역사기록에도 사기꾼이라고 기록되겠지만,[2009.08.20 22:34:51]

라도.완전저거..정신병자네.....


tpswl12오늘 22:39
전라도 광주 사태때 씨를 말렷으야 돼는데 아쉽다신고하기

shinm12오늘 22:40
역적 도적놈 쩔뚝이 팽귄 개때중이놈은 뒤졌당게 절라디언놈들아신고하기




나는 김대중과 전라도인 들이 그의 집권 5년간 실수로라도 경상도의 선량한 양민들.
또는 기업인들을 시범케이스로 죽이고 고문하고 보복하고 그들의 재산을 착취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 당연히 죽였어야 할 조중동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변죽만 올리다가 결국은 유약하게 물러서고만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집요한 저! 저주와, 저! 욕설은 분명 정신병적 수준입니다.

과연 우리 시대에 정상적인 방법으로 그들과의 화합과 통합이 가능 할까요?

나는 비겁하고도 잔인하기는 하지만!
경상도를 제외한 남과북이 단합하여! 경상도에 대한 “역 이지메”를 가할것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최소한의 공격이 최대한의 수비의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쪽수와 힘에 밀려 모두가 그들의 충실한 개가되어 침묵할때!
그들의 이지메는 어느 순간! 당신의 목줄기를 물고 늘어질지 모릅니다.
그들의 저, 끈질긴! 경상도를 위한, 경상도에 의한, 경상도의 오만한 패권주의!를 묵인할때!
역사의 수레바퀴는 남과북의 전쟁이라는 피바다 속으로 우리 모두를 끌고 들어 갈 것입니다.

이제, 또는 앞으로라도, 결국 서울 경기 강원 충청 제주 그리고 북한의 주민. 6000만 모두가 단결하여!
새로운 "후 후 삼국"의, "통일 시대"를 열어가는 수밖엔! 없을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또 이미, 세계사의 흐름은 그러한 쪽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분명, 시대의 흐름에 스스로 낙오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며. 우리들 7,500만 민족의 발목을 잡는
어릿광대질로 날밤을 새울것입니다. 그 미친짓에 더 이상 끌려다닐수 없습니다.

지금 저들의 광기! 저 저열한 질투! 옹졸 편협한 시기심으로는 민족의 통일은 커녕!
영호남의 남남갈등조차 통합하지 못합니다.
때린놈이 먼저 사과를 해야, 진정한 화해가 되거늘! 
나는 지금껏 박정희와 전두환 그 누구도, 김대중과 그들(전라도)을 향해! 
미안하다고 사과 하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죽어 나가는 마당에서도, 국장이니? 국민장이니? 를 놓고 싸우고들 있습니다.
단 한마디도 "안녕"이라는 말 한마디. 이제는 화해합시다, 미안합니다. 라는 한 마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오직! 아직 까지도 그 보라매 공원에서의 그 늙고 비겁한 술취한 놈의 악다구니 처럼!
"전라도 개 새끼들 다 때려 죽여!" 만을 외치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분명 우리민족의 역사적 심판이, 언젠가는 필히 가해질것이라 생각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런 그들의 그 그릇된 탁류에. 우리의 역사가 앞으로도 떠밀려 간다면? 

우리의 미래는 대단히 불행한 결말로 종결되리라 생각 합니다. 


http://blog.daum.net/nogada517/85   일부 내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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